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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품은 수도승

2011.06.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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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품은 수도승

젊은 수도승 둘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평야지대를 지나고 산을 넘자 급류가 흐르는 강이 나타났습니다. 강가에 한 여자가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강 건너 마을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강 이쪽과 저쪽에 밧줄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여자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수도승이 급류가 흐르는 강을 건너려 할 때 여인이 다가와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절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강 건너 마을에 병든 아버지가 있어서 꼭 건너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두 수도승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단지 서로의 표정만으로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잠시 뒤 수도승 중 하나가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먼저 강을 건넜습니다. 뒤에 남았던 수도승은 여자를 안고 강을 가로지른 밧줄에 의지해 무척이나 힘들게 강을 건넜습니다. 강을 건너자 여자는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먼저 강을 건넌 수도승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사라진 뒤 두 수도승은 말없이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침묵하며 걷던 끝에, 강을 먼저 건넌 수도승이 나중에 건넌 수도승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소? 수행을 하는 몸으로 어떻게 여인네의 몸을 안고 강을 건널 수 있는 거요?” 그러자 여자를 안고 강을 건넌 수도승이하하하고 소리 내 웃으며 이렇게 응대했습니다. “아니, 스님은 아직도 그 여자를 안고 있는 거요?”

박상우 작가(동아일보2011-06-2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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