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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은 어떻게 노무현을 속였는가

2011.11.05 11:20

섬세한분 조회: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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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기를 믿어준 대통령까지 속이고 친미할 수 있을까?

‘노무현의 사람’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밥줄을 끊고 내보냈던 이명박 정권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있다. 바로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이다. 참여정부 시대에 한-칠레 FTA, 한미 FTA를 주도했던 김종훈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FTA의 전도사로서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섰다.

미국이 쌀을 걸고 나오면 협상을 깨라
그런데 <위키리크스>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터뜨렸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7년 8월 29일, 그러니까 한미 양국이 FTA에 서명한 지 두 달 정도 되는 시기에 김종훈은 얼 포머로이 미국 하원의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쌀 추가 협상을약속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미국이 쌀을 걸고 나오면 협상을 깨라”고 강경하게 주문했고, 그래서 서명 당시 FTA에는 쌀이 제외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캘리포니아의 곡물업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포머로이의 불평에 김종훈은 “한국 정치권은 농민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강한 보호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재로서는 쌀 문제를 다룰 수 없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의 쌀 관세화 유예가 2014년에 끝나면 한국 정부가 (미국과) 재논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노무현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은 개성공단 생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서 FTA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협상 초기부터 이 문제를 타결 짓도록 지시했지만 김종훈은 멋대로 맨 마지막까지 미뤄버렸다. 역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의 외교 전문을 보자. 2006년 6월 11일에 조태용 외교부 북미국장은 미국 관료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 FTA 협상에 개
성공단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가 또 하나의 관심사”라는 질문에 “김종훈 대표가 ‘정치적인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겨두겠다’고 말하더라” 라고 대답했다. 결국 이 역시 노무현을 속인 것이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개성공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아서 미국에 손쉽게 수출된다면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을 경제 개방으로 끌고 나오는 데 훨씬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은 국내 산업이 겪을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한미 F TA를 추진하려고 했다.
그런데 협상대표 김종훈은 노무현을 속이고 한미 FTA의 진정한 의미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그나마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한국에 불리하고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질시켰다. 바로 그 김종훈이 여전히 협상대표다. 이명박 정부가 이제 와서 ‘노무현이 추진한 FTA’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까지도 속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관료사회가 가진 지독한 보수 성향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들에게는 ‘권력은 결국은 보수의 것’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흔히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고위직 공무원들이야말로 뼛속까지 보수다. 사실 공무원의 정서에는 보수가 더 맞다. 대중들은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원이야말로 IMF가 오든 금융위기가 오든 구조조정 당할 걱정이 없는 가장 안정된 자리라고 생각하고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 자리를 보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렁 정권이 진보 진영 쪽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이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대통령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꼼수를 부려서 보수의 이익을 충실하게 챙긴다.

숭미 사대주의에 찌든 외교부
외교 부서는 더 심각하다. 그들의 미국 편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외교부에서 출세하려면 반드시 북미국을 거쳐야 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외무부 장차관의 3분의 2가 북미외교라인 출신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일본외교라인 쪽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이니 ‘친미연대’나 ‘숭미 마피아’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교부의 미국 편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은 유엔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반기문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노무현을 속인 일이 있었다. 용산기지 이전을 놓고 미국과 협상을 벌이던 당시 외교부 협상팀은 노무현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배제시켜 버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2003년 11월 18일에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 협상평가 결과보고’에는 이 협상팀이 어떤 방침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담겨 있었다.

● 대통령은 반미주의자이므로 협상개입을 최소화시킨다.
●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얼마의 돈이 들든지 추진해야 한다.
● 국회와 국민들이 문제 삼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의 형식으로 문자의 표현을 바꾸는 것을 협상의 목표로 한다.

도대체 이거 어느 나라 협상팀의 방침인가? 한미 양국 모두가 한마음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데 이게 무슨 협상이겠는가? 그냥 일방통행이다.
결국 참여정부가 처음에는 자주 외교를 표방했지만 갈수록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를 비롯한 주요한 외교 문제를 겪으면서 점점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도, 숭미 사대주의에 찌든 외교부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속이고 미국의 이익에만 충실했으니, 오죽하면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 FTA에 적극적이었던 정동영이 이제는 김종훈에게 “제2의 이완용”이라고 부르짖고 있겠는가?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이다. 장관은 그 핵심 브레인이다. 그리고 핵심 관료들은 팔다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뜻이 실제로 반영되려면 머리만 진보여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머리가 원하는 바를 실천하는 부분은 팔다리인데 이 팔다리가 머리에서 내리는 지시를 안 듣고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것이다. 나중에 가면 팔다리가 머리를 조종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행정부의 지지 기반이 약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공무원 사회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래서 관료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 주면서 개혁에 동참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큰 실책이었다. 정권은 기본적으로 보수의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세력들이 과연 대통령의 말을 들었겠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오히려 그들은 주어진 자율성을 보수를 위해서 봉사하는 데 악용했다.
따라서 진보 진영이 집권하게 된다면 공무원 사회를 제대로 개혁하고 수술해서 정부의 머리가 생각한 내용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젊고 유능한, 그리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발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보수 관료들에게 또다시 끌려 다니면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하는’ 예전의 실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개혁의 최대의 적은 보수 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선거 때문에 그래도 가끔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한다. 탄탄한 철밥통을 갑옷처럼 두른 보수 관료들이야 말로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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