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말, 말
당나귀는 큰 귀로 구별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긴 혀로 구별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귀를 준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뜻이고 입을 준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나 사람은 귀는 닫고 입을 열기를 더 좋아하는지 요즘은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설사 듣는다고 해도 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내게 유리한 부분만 듣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들은 대로, 본 대로 남에게 말한다고 해도 상대의 형편에 따라 오해가 생기는데 하물며 보태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빼고 말하는 습성으로 인하여 서로 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런 화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말하고 싶어 하니 문제지요.
발설하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신처럼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신중하고,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한다면 말하는 방법에서도 달라지고 좀 더 말을 줄이려는 노력도 기울일 것입니다.
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
물안개를 무장무장 피어 올리는 호수를 보러 나선 이른 새벽의 산책길에서였지요 시인은 모과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푸른빛의 모과 한 알을 주워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벌레 먹은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마악 썩기 시작한 못 생긴 모과 한 알. 별 생각 없이 받아 차 안에 던져 놓았었는데 차를 탈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향기의 정체가 궁금하여 차 안을 뒤지다가 노랗게 잘 익은 문제의 모과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구석에서 익어가며, 썩어가며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세 번 놀라게 만드는 나무가 모과나무이지요.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향기에 놀라고, 마지막 떫은맛에 놀라고 마는.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나무참외란 뜻의 목과(木瓜)에서 비롯된 모과란 이름이 못생긴 것들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썩어가면서도 향기로운 모과처럼 사람도 나이 들수록 향기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 시인이 제게 건네준 모과 한 알 속엔 그런 숨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 백승훈 님, '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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