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나가수>에 숨은 막장코드

2011.06.21 21:26

유체이탈 조회:1718

< 나가수 > 를 볼 때마다 즐거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어떤 프로그램을 즐겨보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 찜찜함을 느끼는 경우는 나에게 매우 특이하다. 지지난주에도 그랬지만 지난주에도 그랬다. 갈수록 이런 이중적인 느낌은 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지난주 난 박정현박효신의 < 바보 > 를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것을 보고 주책없이 눈물이 나서 옆의 아내와 큰놈의 눈을 피해 눈물을 훔치느라 혼났다. 그동안 박정현에게 가창력만큼의 큰 매력을 느끼진 못했지만 이날 그의 무대 퍼포먼스는 마음을 흔드는 데가 있었다. 그게 애절한 가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달력 내지는 호소력은 여느 때보다는 감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펄시스터즈의 < 커피한잔 > 를 리메이크한 와이비의 무대도 록음악과 라이브 무대가 펼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윤도현이 작심한 듯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핸드마이크와 하모니카를 사용해서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이끌었다.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 를 리메이크한 비엠케이도 첫 1위에 걸맞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장기인 재즈풍으로 편곡한 무대는 널리 알려진 노래를 한국 대중들이 친숙하지 않은 재즈 리듬감을 살려 새롭게 편곡해 흥겨운 무대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했다. 두번의 7위라는 탈락위기를 딛고 일어나 서바이벌 시스템에 적응해가는 실력파 여가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난 전체적으로 요 몇 주 동안 나가수를 보면서 감동의 무게보다는 아쉬움의 무게를 더 크게 느낀다. '한국 방송의 막장성'을 목격한 느낌이라고 할까. '성대 높이 뛰기, 성대 차력'이라는 음악평론가 김작가의 혹평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지적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방송사에 의해 무작위로 선발된 것으로 짐작되는 10~50대의 세대별 청중평가단의 평가의 인상비평에 출연 가수들의 휘둘리기 십상인 게 < 나가수 > 라는 프로그램의 기본적 속성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 나가수 > 에 가장 잘 적응하며 10년 넘는 가수생활 중 절정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듯한 김범수조차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보컬 역량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방송 특성상 너무 '성대싸움'으로만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엔진 과열' 상태의 무대를 마치고 나면 목에 상처가 생긴 느낌도 들어요. 지난번 부른 '늪'은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 영역을 벗어난 건데 이후 한동안 목소리가 안 좋아져서 고생했죠."

< 나가수 > 에서 김범수가 부른 노래중 '늪'이 가장 절창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리를 했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조관우의 고음에 근접하면서도 2절은 록버전으로 두가지 색깔을 들려준 그의 '살아남기위한 사투'가 결국 성대이상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3명을 고르는 청중평가단의 심사방식은 결국 '청중평가단의 머릿속에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기느냐'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참가 가수들이 절정의 순간에 고음을 쏟아내는 퍼포먼스에 내몰리는 것이다. 이소라가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달리 해석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 고운 색깔을 유지한 것은 어쩌면 자폭에 가까운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여러 가지 구설수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탈락을 감수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창력 하나는 '당대 최고'라는 조관우가 김범수와 함께 꼴찌를 한 것은 무대 퍼포먼스에 좌우되는 청중평가단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첫 출전한 조관우는 압박감 때문인지 선곡(원미연의 < 이별여행 > ) 실수 때문인지 자신의 색깔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는 미흡한 무대를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꼴찌를 받은 게 온당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김범수도 듀스의 댄스곡 '여름 안에서'를 아카펠라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하면서 자신의 음악의 다양성을 과시했으나 청중평가단의 평가는 냉혹했다. 두 가수 모두 '소리질러서 여운 남기기'라는 '막장코드'를 피하거나 아니면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게 어느덧 기본이 돼 있다. 다른 나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기기묘묘한 대화법이다. '드라마 속 현실'은 큰소리를 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한국사회 인간관계의 천박함을 반영한 것이지만 '이래도 보지 않을래?' 식의 한국 드라마의 막장성은 현실보다 한발 더 나가있다. < 나가수 > 에도 이런 막장코드가 발동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어쩌면 한국 당대의 대표 가수들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드는 방송사나 이를 즐겁게 지켜보는 한국 시청자나 평가단이나 막장이긴 마찬가지이다.

제이케이김동욱이 압박감에 못이겨 노래를 중단하고 2위 평가에도 물러날 수밖에 없게 만든 방송 시스템을 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을 갖는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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