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박인환

2020.01.15 21:49

ArtDen 조회:491 추천:5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 박인환   

 

낭송: 박인희

1955 발표작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56년 이른 봄, 그가 31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해였다. 6,25전잰으로 폐허가 된 명동의 어느 대폿집. 그곳이 '경상도집'이라는 말(술집)도 있고 탈렌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은성'이란 술집이라는 말도 있다. 

 

이곳에서 박인환은 작곡가 이진섭, 송지영, 가수 나애심,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난했던 "박인환"은 밀린 술 외상값을 갚으라는 주인의 말에, 詩로 술값을 대신하기 위해 '세월이 가면' 이라는 시를 즉흥으로 썼다. 

 

시를 읽은 작곡가 '이진섭"은 즉석에서 샹송 분위기의 곡을 작곡 했고, 가수 "나애심"에게 노래 부르기를 청했다. 그녀는 흥얼흥얼 콧노래만을 부를 뿐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송지영,과 ,나애심,은 돌아가고, 명동의 마지막 ,보헤미언, 또는 ,명동백작,으로 불리우는 소설가 '이봉구"와  태너 '임만석"이 합석을 하게 되었다. 이때 "임만석"이 노래를 불렀고 그곳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술집 주인은... 詩와, 노래가 너무 슬퍼 다시는 부르지 말라고 했다 한다. 마치 자신의 마지막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 '세월이 가면'을 쓰기 전날 박인환은, 10년이 넘도록 찾아가지 않았던 첫사랑 연인이 묻혀있는 묘지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명동의 허술한 어느 선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며 이 시를 쓴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 마치 그 사람 이름을 잊은 듯, 그의 가슴에 사랑하는 연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사랑을 추억한 것이었다. 

 

며칠 후 "김훈" 에게 짜장면을 얻어먹고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그는 술 외상값으로 맡겼던 만년필을 찾아, 그의 막연한 친구였다가 나중에 인연을 끊은 김수영,에게 그 만년필을 주었고, 돈이 없어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찾지 못한채 겨울 외투를 입고 31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되었다. 그의 관에는 담배가 놓이고 생전에 좋아하던 술을 주기 위해 조니워커를 부어주었다고 한다 

 

 

Virginia Woolf  1882-1941

 

20세기 영미 모더니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의식의 흐름 기법을 고안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1970년대 페미니즘 비평의 대두에 따라 이전까지는 간과되었던 페미니즘 작가로서의 측면들이 재조명되었고, 후대의 페미니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 중심 인물 중 하나로 재평가되었다.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테판은 작가였으며, 어머니는 줄리아 덕워스이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13살의 울프는 최초의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1904년 22세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울프는 두 번째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투신자살을 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12년 30세때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하고 1915년 '항해'를 출판한 뒤 그 이후로 '밤과 낮'을 간행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27년에는 '등대로', 1928년에는 '올랜도'가 호평을 받았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 두 문호의 관계는 1922년부터 십년간 이어졌고, 1941년 버지니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버지니아의 1928년도 소설 올란도는 색빌-웨스트에게 바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색빌-웨스트의 아들 나이젤 니콜슨은 이 책이 “문학사상 가장 길고 매력적인 연애편지”라고 했다.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시체는 20일 후인 4월 18일 발견되었으며, 당시 입고 있던 코트에서 돌이 발견되었고,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어서 입고있던 코트에 돌을 가득 채운 후 강으로 들어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우울증과 허탈감, 환청, 어린시절 의붓오빠들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생전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얻기 위해 꿈을 잃어버리는 일’이라는 말을 했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 (유서)

 

버지니아 울프는 현재 우리가 조울증이라고 부르는 정신 질병을 앓았다. 그녀는 마지막 소설의 집필을 끝낸 이후 우울증에 빠졌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런던에 있던 그녀의 집이 붕괴되었을 때, 버지니아 울프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버지니아 울프가 서섹스 시골집에서 아침산책을 나갔다가 근처의 오즈강에서 주머니 속에 돌을 채워넣고 물에 빠진 시체로 발견됐던 1941년 3월,그녀는 교정으로만 여러 해를 끌어오던 마지막 소설 '세월'을 탈고한 뒤였다.

 

'세월'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극단적인 만족과 절망 사이를 오가던 그녀는 한 기록에서 “다시 환청이 들려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적었다.그녀는 남편 앞으로 “더 이상 당신의 삶을 망쳐놓을 수는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내 상처를 이해해준 그대에게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당신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봅니다. 레너드 울프. 제 처녀 때의 이름 버지니아 스티븐이 당신과 결혼하면서 버지니아 울프가 된 것을 저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나이 예순, 인생의 황혼기이긴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입니다. 

 

제 자살이 성공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부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입방아를 찧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도 없는 터에 남편의 이해 부족, 애정 결핍 등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까 솔직히 두렵습니다. 이 유서는 당신이 엉뚱한 구설수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랍니다.

 

1912년 결혼한 이래 30년 동안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였고, 저를 진정으로 아껴 주었던 레너드 그 동안 차마 얘기하지 못했던 제 생애의 비밀을 이 유서에서 당신께 말하려 합니다. 

 

저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첫 번째 아내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죽자 변호사 허버트 덕워스의 미망인 줄리아와 재혼을 합니다. 속된 말로 홀아비와 과부의 결혼이었던 거지요.

 

제 어머니 줄리아는 이미 네 명의 자식이 있는 상태였고, 아버지는 전처 소생의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재혼한 두 사람 사이에서 오빠 토비와 언니 바네사, 저 그리고 동생 애드리안이 줄줄이 태어났지요. 그리 넓지도 않은 집에서 아홉 명 아이와 두 어른이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봉사정신이 무척 강한 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구완하러 다니느라 정작 집에 있는 아이들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셨지요. 큰애가 작은애를 알아서 잘 돌보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셨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 생애의 불행은 여섯 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큰 의붓오빠인 제럴드 덕워스가 어머니 없는 틈을 타 저한테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어요. 자기와는 신체 구조가 다른 저를 세밀히 관찰하고 만지고. 그 시절부터 저는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성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조건 배격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지요.

 

불행은 설상가상으로 몰아 닥쳤죠. 어머니는 이웃사람을 간병하다 그만 전염이 되어 제가 열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잘 이해해 주던 이복언니 스텔라도 2년 뒤에 죽었는데 바로 그때 아버지마저 암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저와 언니 바네사가 신경질이 나날이 심해지시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맡아서 하는 것이야 뭐 그래도 힘든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춘기를 막 넘긴 작은 의붓오빠 조지 덕워스가 저한테 갖은 못된 짓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의지할 데 없어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저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일을 수시로 당하고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집에 책이 없었더라면 전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전처처럼 죽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는 총 65권에 달하는 대영전기사전의 책임 집필자여서 집에 책이 엄청나게 많았고, 저는 현실의 불행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에 파묻혀 지냈습니다. 

 

저는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너무나 무서워했고, 사춘기 시절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신이 청혼했을 때 저는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은 부부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작가의 길을 가려는 나를 위해 공무원 생활을 포기해 달라는 것. 세상에 이런 요구를 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성적 욕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를 팽개치고 오겠다는 사람은 레너드, 당신 이외엔 없을 거예요. 

 

고통스런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며 제가 작품을 쓰는 동안 당신은 출판사를 차려 묵묵히 제 후원자 노릇을 해 주셨지요. 저는 지난 30년 동안 남성중심의 이 사회와 부단히 싸웠습니다. 오로지 글로써. 

 

유럽이 세계 대전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 때 모든 남성이 전쟁을 옹호하였고, 당신마저도 참전론자가 되었죠. 저는 생명을 잉태해 본 적은 없지만 모성적 부드러움으로 이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작가로서의 역할은 여기서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꿈을 간직한 채 저는 지금 저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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