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현재(10일 종가 기준) 주가는 229.65달러. 주식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약 5개월 만에 작년 10월 중순(112.27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의 두뇌 역할로 쓰이는GPU(그래픽 처리 장치)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챗GPT’와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AI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려는 기업들 때문에 엔비디아의 몸값도 2배로 뛴 것이다.

점차 커지는 AI 반도체 시장을 놓고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외의 AMD, 인텔을 비롯해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와 같은 국내 스타트업까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AI 반도체는 AI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대규모 연산을 초고속·초저전력으로 실행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AI의 핵심 두뇌에 해당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반도체 시장이 올해 553억달러에서 2026년에는 861억달러(약 11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반도체 시장 경쟁 치열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일제히 ‘엔비디아’를 겨냥하고 있다. GPU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엔비디아는 챗GPT가 불러온 AI 붐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챗 GPT 개발사인 오픈AI가 사용하는 수퍼컴퓨터에도 엔비디아의 1만달러짜리 GPU ‘A100′ 1만개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챗GPT와 경쟁하는 기업들도 엔비디아의 GPU을 몇 개 썼는지 밝히는 것을 경쟁력으로 내세울 정도다. GPU는 원래 그래픽 처리를 위해 만들어진 반도체지만, AI에 필요한 병렬 연산에서 기존 CPU(중앙처리장치)보다 월등해 AI의 두뇌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AI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에 이어 GPU 시장 2위인 AMD는 지난해 2월 500억달러를 들여 미국 반도체 기업 자일링스를 인수했다. 자일링스는 용도에 따라 설계를 바꿀 수 있는 FPGA(프로그래머블 반도체) 분야의 세계 최고 기술을 갖춘 기업으로, AI반도체 개발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텔도 2019년 말 이스라엘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랩스를 20억달러에 인수한 후 지난해 5월엔 하바나랩스가 개발한 2세대 프로세서 ‘가우디2′를 출시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대형 IT·반도체 기업들이 엔비디아에 AI반도체 시장을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올해 최소 두 개 이상의 유망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한국 스타트업도 일제히 뛰어들어

국내에서도 다양한 AI반도체 스타트업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엔비디아의 GPU보다 더 AI 연산에 특화된 두뇌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도체인 NPU(신경망 처리장치)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퓨리오사AI, 리벨리온, 사피온 등이 손꼽한다.

퓨리오사는 2021년 NPU ‘워보이’를 내놓으며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관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내년 초 1세대 모델 대비 하드웨어 성능은 8배, 데이터 전송속도는 30배가량 향상한 2세대 칩을 선보이며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SK스퀘어에서 분사한 사피온이 2020년 선보인 AI반도체 X220은 엔비디아의 GPU 대비 전력 소비는 40%가량에 불과하고 성능은 1.6배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사피온은 올 하반기 ‘X220′ 대비 성능을 4배 이상 끌어올린 ‘X330′을 내놓을 예정이다.

2021년 AI반도체 ‘아이온’을 내놓은 팹리스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차세대 모델인 ‘아톰’을 지난달 출시했다. 지난해 리벨리온에 300억원을 투자한 KT는 상반기 출시 예정인 초거대AI 서비스 ‘믿음’에 아톰을 탑재한다. 리벨리온이 아톰을 내놓은 날 로이터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한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자를 키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초거대 AI를 운용 중인 네이버도 AI반도체 개발을 위해 삼성전자와 손잡은 상태다. 네이버 관계자는 “기존 GPU 대비 10분의 1 크기에, 4배 이상의 전력 효율성을 갖춘 반도체 설루션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