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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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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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글 또는 워드문서로 카피좀 부탁드립니다 ㅠ_ㅠ
악수와 절의 범벅
『뿌리깊은나무』 1979년 3월호
'오랫만이다. 악수나 한번 해 보자'는 인사말이 아직도 자주 들린다. 악수나 한번 해 보자는 말에는 악수를 하기가 좀 계면쩍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듯하며, 그런 말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손을 내미는 것을 좀 쑥스럽게 여기는 심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들 부산히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들어 댄다. 서울과 부산과 광주와 같은 대처에 사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나의 경험으로는, 남쪽 제주도 가파섬의 수줍은 여자 교사로부터 북쪽 강원도 고성의 다방에 드나드는 우락부락한 건달에 이르기까지 악수 시합에 나가면 일등할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이 이 나라다.
악수라는 것이 빈손을 내 보이면서 무기가 없으니 안심하라던 데서 나왔다던가? 이와 같이 무장 해제의 증거로 내미는 것이 악수하는 손이라면, 본디 칼이나 권총 같은 것하고는 별 인연이 없던 우리는 불법 무기 소지자로 오인받을 험상을 지닌 사람이나 군인이나 경찰관이나 기관원이 아닐 바에야 애초부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거나 받아들일 까닭이 아예 없지 않을까?
이 서양 인사법은 그 무장 해제의 동기가 그럴싸하게 보여 이 나라에 번진 것이 아니라, 서양식이라 하면 오금를 못 쓰던 제국주의 일본의 '하이칼라'들이 멋으로 시작했던 장난이던 것이 이 나라가 악수하는 서양 사람들의 힘으로 해방이 되고 나서, 새 세상의 상징, 곧 민주주의의 '상표'로 둔갑하여 유행하여 왔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과연 악수는 민주주의 이념에 알맞는 인사법일까? 오히려 그것은 웃사람만이 시동을 걸 수 있어서 민주주의의 평등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다. 아랫사람이 -또 서양 풍속으로는 웃사람인 여자에게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는 뺨을 맞아 마땅할 버릇없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서양식으로 인사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은 그 손이 상징하는 무장해제의 갸륵한 본뜻에도 아랑곳 없이 이녁이 웃사람임을 선언하는 셈이다. 그것이 총칼이 쥐어지지 않은 빈손이어서 평화의 상징이 된다고 하지만, 그 움직이는 방향이나 동작은 거의 주먹질이나 칼질을 닮았으니, 잘 보아주어서 진취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침략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절은 동작이 어질고 겸허하다. 강한 놈의 처지에서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 안심하라는 '침략자'의 몸짓이 아니라, 아예 저편의 사나움 같은 것은 아량곳 없이 그앞에서 겸허하게 순응하는 태도다. 그래서 비록 웃사람이 먼저 절을 하는 수가 있더라도 흉을 잡힐 수는 있을지언정 뺨을 맞지는 않는다. 악수가 저편에 반응이 있어야 되는 조건이 붙은 인사법이고, 저편의 마음을 움직여 그에게서 손을 끌어내고자 하는 책략의 꼬임이라면, 절은 저편에게서 바라는 대가가 터럭만큼로 없는 겸허성의 표현이다. 절하는 사람은 눈길이 미치는 곳이 저 아래 땅바닥이어서 절받는 사람이 쥔 칼이나 허리에 찬 권총 따위는 의식하지 않는다.
절은 서로 지위가 엇비슷한 사람들이 하는 맞절이 아니면. 대체로 아랫사람이 먼저 한다. 아랫사람의 절을 받으면 웃사람도, 비록 허리를 굽히는 각도는 덜할망정,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절을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인사법이다. 그러나 흔히 오늘의 어른들은 절을 받고 절로 답례를 하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세워 둔 채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웃사람이 내민 손을 본 아랫사람은 고개는 절했던 대로 숙여두고 그 '훌륭한' 손을 그냥 만지는 것이 황송스럽다는 듯이 두 손으로 '받는다.' 특히 권위주의가 체질에 배어든 일부 사회에는 웃사람과 인사할 때에는 절을 하면서 오른팔을 왼손으로 받치고 악수하는 풍습까지 생겼다.
웃사람은 악수만 하고 아랫사람은 절도 하고 악수도 하는 이 신식 인사법은 이제 국가적인 예절같이 되어서 무슨 고관의 임명장 수여식이나 새마을 지도자 표창식 같은 공식 행사에도 거의 빠짐없이 나타난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 절과 악수의 범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신식 예절이 아랫사람의 절에 답해서 절하는 예절을 웃사람에게서 빼앗아갔고, 아랫사람이 절할 때마다 내미는 손으로 자기의 권위를 선언하는 오만성을 그에게 주었다는 것이나 아닐까? 그리고 이런 경우에 아랫사람의 절은 이미 겸허성이 아닌 비굴성의 상징이 되고 그의 악수는 웃사람의 권위에 항복한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손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데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밑을 닦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나날이 만질 데, 못 만질 데를 분명히 가릴 겨를도 없이 무엇인가 부산히 만져야 하는 것이 사람의 손이다. 그리고 악수하는 두 손이 서로 나누어 갖는 것으로 더러운 것은 있어도 깨끗한 것은 없다. 한쪽 손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상대편의 손에 병균 같은 나쁜 것을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보장은 있을지언정 상대방의 손에 묻은 병균에 대들 항생제 같은 이로운 것을 옮겨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보장은 없다. 세균학자에게 캐물어 볼 필요도 없이 이 나라에 번지는 많은 질병의 중신아비가 어쩌면 이 악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은 서양 사람들의 손과는 달라서 아주 깨끗하다고 치자. 그렇더라로, 저편의 손이 물컹하거나 땀으로 끈적끈적하거나 힘에 넘쳐 아픔을 주거나 힘이 없어 하느적거리거나 해서 싫고, 이편의 손이 저편에 그런 느낌을 줄까 보아 걱정이 되어 머뭇거려지고 때때로 다급하면,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바짓가랑이 같은 데에 손을 먼저 문지르고 하는 것이 악수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 보는 핑계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악수는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반가와서 손을 잡거나 몸을 만지는 행위는 꼭 서양 사람만이 해 온 것은 아니다. 두 손으로 반가운 사람의 손을 덥석 잡는 아낙네의 한국식 악수도 있고 예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어른의 인사도 있고 어머니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아이의 응석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서양식 악수의 뜻을 되새겨 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육신의 접촉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문화적인 동질성을 유지시켜 온 절의 훌륭한 뜻을 변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 시늉으로 시작된 이 손장난은, 휴가 나온 군인이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하는 그 전통적인 거수 경례도 하도 자주 보니까 그저 씩씩한 아들의 공손한 절과 같이 보이고, 많은 시민이 한국말과 한국 동작으로 '국기를 대하여'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역된 일본말과 서양 몸짓으로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한답시고 가슴팍에 손을 얹는 행위도 되풀이되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관료 사회에 유행하는 선서라는 이름의 맹세가 서양식으로 바른손을 들고(서양식으로 하려거든 왜 아예 왼손을 예수경이나 불경 위에 올려 놓기까지 하는 것은 빼먹었을까? 이 선서라는 것의 효시는 아마도 구헌법 제54조에 규정되었던 '대통령 취임 선서'일 터인데, 거기에도 바른손을 들어 서양 사람의 시늉을 하라는 법은 없다) 하는 행위여도 눈에 익으니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그저 유행을 타고 이 나라에 번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따름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가짐이 행위를 다스리듯이 행위가 마음가짐을 다스리기도 한다. 무턱대고 악수하는 행위로 마음가짐에 얼마쯤은 얼룩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형님들과 언니들보다도 우리가 더 나아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 아무리 악수가 판치는 세상에서나마 절을 좀더 해 보자. 절도, 요새 문을 막 연 서울의 ㅅ 호텔과 ㄹ 호텔의 종업원들처럼 일본식으로 하는 절이 아니라, 한국 절답게 해 보자. 절이야말로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사법일 터이고 이 한반도에 사는 높고 낮은 사람들이 서로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 절하는 마음을 먹을 때에 평화도 통일도 더 빨리 재촉될 터이기 때문이다.
[출처] 악수와 절의 범벅|작성자 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