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할 권리
2012.02.27 11:17
자료를 올려놓고 언제 어디서나 내려받을 수 있는 클라우딩 컴퓨팅 환경이 보급되고 있는 지금,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웹스토리지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들고 충무로에 나가 출력작업을 했다. 대용량 파일을 작업하고 고해상도 출력을 할 수 있는 요즘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몇 년 전 풍경이 그러했다. 당시 사용하던 고가의 ‘밥벌이용’ 하드디스크들은 사무실 한쪽에서 처분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다.
예전이면 며칠 걸리던 작업은 이제 거리에 상관없이 퀵이나 택배로 단 몇시간에 결과물을 받아 볼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일처리를 빠르게 했지만 시간이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다른 일 처리하는데 바쁘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마우스를 굴리며 작업에 매달린다. 기술의 진보는 작업의 여유를 주기는커녕 분주하게 만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찍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바로 내려받은 후 시안 이미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모방의 기회를 주고 창작의 고통을 줄여줬다.
그 대신 열정을 잃었다. 디자인 소스를 누가 많이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다양한 디자인 툴은 디자이너의 작업을 원활하게 하도록 돕는다. 미적인 감각보다는 그것을 쓰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비슷한 형태의 작업들을 검색하고 비교하며 작업한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종이에 먼저 스케치되고 이를 토대로 작업을 하던 일은 옛날 이야기다.
기계가 복잡해 질수록 사람은 단순해진다?
디지털의 발달은 이렇게 한 산업분야의 사무실 풍경을 바꾸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다음 세기는 이미지로 생각한 것들을 그대로 그려내는 시대가 올 것이다. 실행활에 구현되기까지는 멀었지만 이미 기술적인 접근 가까이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 눈동자의 굴림으로 움직이는 마우스 볼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했다.
어떤 기술들이 우리들을 놀라게 해줄 것인가.
상상했던 일들, 영화나 만화속의 대화나 장면들이 우리 생활에 적용되는 것들을 보며 작가들의 상상력에도 놀라고, 그것들을 실현 가능케 한 엔지니어들의 능력에 다시 놀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공허함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기술이 인간 생활을 파고들어 올 수록 허전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기술이 사람의 경험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이제 이런 신기술은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마우스 한 번으로 검색창에 쓴 단어들은 수십만 개의 관련 문서와 웹페이지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터치 한 번으로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골라내기만 하면된다. 그렇게 해서 과제를 제출하고, 논문을 완성하고 필요한 보고서를 만들 수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더 빠르고 많은 결과물을 자랑하는 검색서비스는 곳곳에 퍼져 있는 자료와 이미지들을 가져다 쓸 수 있게 해주었다. 멋진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던 그 멋진 세상일까.
디지털이 만들어주는 지하철 안 풍경
이 책은 바로 이같은 기술진보의 시대에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서비스와 기술을 짚어보고 이들을 통해 우리가 얻는 득이 무엇이며, 인터넷으로 촉발된 닷컴혁명 이후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놓쳐버릴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사이버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많은 글과 강연을 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10가지의 생존법칙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다는 강요는 결코 아니다. 인터넷이 주는 디지털 미디어 리소스로 인해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중독’이 될 만큼 익숙해진 생활들을 하고 있으며, 그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하철 의자 일곱명의 자리에 앉은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흰색의 이어폰줄에 매달린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일상적인 풍경을 만난다.
게임하고, 뉴스 검색하고, 드라마와 만화를 넘겨보며 웃는다. 카톡으로 끊임없이 소통한다. 퇴근길이나 출근길 전철 안은 신문을 읽거나 모자란 잠을 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사람보다 이제는 눈을 뜨고 손으로 ‘꼬집었다가 밀어내며’ 작업을 하는 분주한 디지털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던 풍경인가. 물론 디지털 미디어 기업들은 이러한 풍경을 고대해왔으며, 앞으로 더 많이 그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의 이익을 유지하고 더욱 확대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패드를 활용한 교실수업도 도입을 한다고 한다. 디지털 스쿨이 생기는 것이다. 책과 공책이 없는 교실. 기업들은 더 빨리 더 많은 신제품들을 연속으로 내놓고 있다. 멀쩡히 쓸 수 있는 것들도 ‘공짜’ 마케팅에 의해 바로 처분된다.
스마트폰 케이스를 비롯 부가상품들이 디자인하는 기업들도 덩달아 분주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대리점과 IT전문매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는 것만큼 대리점도 골목 골목으로 들어가고 주요 길목에 있던 대리점에 한두명이던 직원들도 6, 7명이 들어서 테이블에 앉아 상담하는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점점 ‘탐욕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 스마트폰은 이제 단순한 통화장치가 아니라 자신을 대변하는 또 다른 도구로 만들기 위해 기업들은 마케팅 비용을 투여한다. 이 모든 것이 열심히 써주고 ‘집착’하는 고객의 비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카페에 앉아도 이야기 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보고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는 중에도 늘 눈을 떼지 못한다. 점심 먹는 밥집도 휴대폰이 해결해주기도 한다. 식사 전 인증샷은 기본이다. 가끔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때 우리에게 이런 시대적 상황을 놓고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길 바라는 조언을 하느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더글러스 러시코프, 이 책의 저자이다. 소셜시대를 살아가는 10가지 생존법칙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는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이 되지 말고 그 기술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4시간 상시접속을 끊어라, 왜?
상시접속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놓지 못하고 산다. 상시접속은 만사가 아니다. 끌려가지 말라고 말한다.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집중도는 그만큼 떨어졌다. 기계에 의존하는 동안 우리의 뇌는 더욱 단순해지며, 기계는 오히려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즉답을 원하는 인터넷의 요구에 응하지 말며, 능동적으로 접속을 끊으려는 시도를 할 것을 당부한다. 빨리 답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더 빨리 대응하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생활경험을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을 투여함으로 해서 통제할 수 있는 선택의 권리를 갖기를 요청한다.
인터넷은 지역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탈지역화를 부추겨 어디를 가나 같은 메뉴와 프랜차이즈들을 만나게 하고 시스템화된 메뉴로 개성화된 지역을 몰개성으로 만든다. 기기의 발달과 접근성은 그 지역만의 독특성을 잃어버렸다. 모든 곳이 산업화되고 기계화되었다. 이런 시대를 이겨내는 것은 경험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말 일이다.
또한 많은 정보들은 오히려 생각의 기회를 앗아간다. 앞뒤 문장이 주는 말들을 잘라내고 오직 검색에 충실한 결과만을 노출시켜 맥락을 찾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결국 깊이 있는 참여가 되지 못한다. 저자의 걱정은 이렇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를 언론의 수동적 구경꾼 역할에서 해방했지만, 그 기술의 단순화 경향은 우리를 다시 한 번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수동적 구경꾼으로 축소했다. 굉장한 차세대 ‘디지털 기기(iThing)’가 나온다는 발표는 우리 대다수에게 열망이 아니라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도 돈을 내고 사용법을 익혀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나 있을까?”
심한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저자의 염려는 수동적 구경꾼에 머물러서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바로 이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출 것을 기대한다. 무슨 프로그래밍인가. 기술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버튼 하나로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데 뭘 더 배우고 익히겠는가. 매뉴얼도 없을 만큼 예측가능한 기기들을 대하고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이야기인즉, 소수 엘리트들에게 이 프로그래밍 통제권한을 넘겨줌으로 해서 더 큰 일을 당하기전에 이 프로그래밍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짐으로 해서 인간적인 형태의 기술을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테크놀로지들은 대개 그것이 나타나게 된 본래 목적이나 이유와는 매우 다른 용도와 효과를 낳게 마련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기술의 시대에 살면서 기술이 주는 혜택을 누린다. 어디나 쉽게 접근 가능하며, 어느 곳에 있는 자료도 빠르게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여유가 생기고 인간적인 경험들이 더 늘어났는가.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독특성, 소통, 언어보다는 행위의 진실성,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같은 인간이 지녀야 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바로 이 소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존비법임을 일깨워 준다.
“친구들은 사고파는 물건들이 아니다”
10가지 생존법칙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소셜 미디어의 발전에 대한 저자의 견해다. 소셜미디어, 소셜서비스라고 하는 것들 앞에 다른 서비스들이 당시에는 최고의 서비스로서 언제나 오래 갈 것처럼 주주들을 끌어들이고 이용자들을 모은 서비스였지만, 지금 이들은 어디에 가 있느냐라고 묻는 대목이다. 이들의 상업적인 계산이 들어나는 순간, 기업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가 그 정책들을 계속해서 바꾸는 데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프라이버시 침해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우정을 돈으로 바꾸려는 기업의 속셈 때문이다. 그들의 활동을 통해 모은 정보는 사교 목적 이외의 용도로 쓰이고,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오싹해한다. 친구들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소셜로 가는 진짜 방법이 될 것인가.
그것은 ‘친구의 친구들과 친분을 맺고 서로서로 팔로우’하는 것이다. 이는 문화를 창조하는 방법이며, 서로 모르지만 잠재적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일 듯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연결해 주는 방법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점심을 뭘 먹을 지 거리 생각하며 걷는 동안 소셜마케팅으로 쿠폰을 뿌린 한 스시집에는 소셜쇼핑을 한 ‘스마트한’ 남녀 학생들이 30여미터 가량 줄을 만들어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편리함이 주는 반값이 주는 경제성에 빠져 우리가 놓치며 사는 것은 없는지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저자의 요청이 다소 거북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이 말 저 말 던진 것이 아니라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한 정성으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손해 날 일은 아니겠다. 왜내하면 좀 더 건강한 다음 세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시접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로그아웃’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소셜시대를 살아가는 10가지 생존법칙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더글러스 러시코프
민음사
- 출처: Bloter.net by 늘푸른길 | 2012.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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