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모텔이 번성하는 이유
2012.01.13 19:17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바람을 많이 피기 때문에' 모텔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잘 안다. 모텔이 '바람피우는 사람'을 위해 생겼다면 독일에는 왜 모텔이 없는지 설명할 수 없다. 독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바람을 덜 핀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 곳곳에 모여 있는 '모텔애정촌'을 보면서 한국에서 모텔 사업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점잖은 부모들의 모순된 사고방식'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모텔애정촌의 진짜 고객은 젊은 연인들이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들만의 자유공간이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텔이 번성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독일에서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자유롭게 집에 데려오고, 주위 사람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또 젊은 연인들은 대부분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산다. 동거를 하다가 결혼을 하거나 그냥 계속 함께 살기도 한다.
"무슨 걱정 하고 있어? 좀 말해줘!"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지."
"내 엄마 아빠는 진짜 괜찮아. 너도 엄마 아빠 모두 좋아하게 될 거야."
"그래도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니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의 태도를 이해했다.
"너 혹시 오늘 엄마 아빠에게서 허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음…. 당연히 이 상황은…."
나는 크게 웃었다.
"내가 누구랑 살 건지는 내가 결정하는 거야. 엄마 아빠 어느 분도 내 결정에 전혀 간섭하지 않을 거야. 두 분 다 그저 호기심만 있어. 네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지. 우리는 오늘 허락받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야."
그는 계속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03 고향에 도착해서 우리는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와 엄마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엄마 집으로 갔다. 밤이 깊었을 때 그가 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나 어디서 자?"
나는 손님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가 다시 속삭이듯 물었다.
"너는 어디서 잘 거야?"
"응? 당연히 여기서 같이 자지!"
그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우리가 같은 방에서 자도 괜찮아?"
나는 또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이 사람이 우리가 같은 방에서 자도 괜찮냐고 물어봐! 하하하."
엄마도 웃었다. 우리가 따로 자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엄마도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04 그후 몇 년 뒤에 한국에 왔고, 연애 중인 이들도 가끔 만났다.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독일에서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부모님께 인사 가야 하는 연인을 만났을 때는 '엄마 집을 방문하던 날 긴장하던 내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여자친구의 집이 멀더라도 남자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밤기차를 타고 돌아가거나, 근처 호텔에 가서 혼자 자야 한다. 심지어 여자의 아버지와 함께 자야 할지도 모른다. 남자친구는 그날 자기 여자친구의 방에서 같이 못 잔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이제 '예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금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한국 부모들은 왜 자기 딸이나 아들이 애인과 함께 집에서 같이 자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왜 젊은 연인들이 부모 앞에서는 '정신적 연애'만 하는 척해야 하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하는지 잘 알면서 왜 굳이 젊은 연인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신문이나 TV에서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 모텔이 들어서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을 몇 번 봤다. 이런 어른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나중에 애인을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자거나 결혼하지 않은 채 같이 살려고 하면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만약 그런 것에 반대할 거라면 모텔이 많이 생기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독일에서 모텔 사업이 안 되는 이유는 독일 사람들이 바람을 덜 피우기 때문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인사드리러 찾아온 딸의 남자친구가 딸의 방에서 함께 자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가 없기 때문에 모텔 사업이 잘될 리가 없다. 젊은 연인들의 연애 현실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는 점잖은 분들이야말로 한국에서 모텔 사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을 마련해준다.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 일러스트 | 한은선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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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행중 2012.01.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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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oss 다! 2012.01.13 20:38 사실 가식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도덕" 이라는 단어로 오랜동안 "교육"을 해온탓 이기도 하겠죠
솔직해도 될법한일을 구지 거짓으로 "척"하게끔 만드는것 말입니다.
다 알고는 있으되 그저 "모르는척" 해줌으로서 "미덕"이라도 되는양...
그덕(?)에 현제의 썪어빠진 정치판도 암암리에 탄탄하게 건설될수 있었던 토양을 제공한셈이며
이미 거의 대부분이 알고는 있으나 모른척하는 "사회부조리" 들과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풍조
"떳떳하지못한 이들"이 바라 마지않는 그런세상을 우리들 스스로의 묵계처럼 만들어온거죠
불편한진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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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sion 2012.01.13 20:47 공감합니다. 문제는 성에 관해서 굉장히, 매우 닫혀있다는 거죠.
형식적 성교육만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는, 주로 성은 숨겨야 하고 감춰져야 할, 교양있는 시민으로선 성에 관해서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틀에박힌 보수적 태도때문에 독일과 같은 나라에선 이해못할 관습일까요? 여튼 그런게 생겨난거죠.
성교육도 마찬가지에요. 성교육을 가르치는 분마저도 심지어 성에대해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성교육이 정말 말그대로 '들으나 안들으나 마찬가지' 의 효과를 가져오죠. 실질적 성교육이 아닌.. 뭐랄까요 생물시간에 배우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구조 차이쯤으로 비교할까요. 고작 그정도로만 설명하면서 성에 관해서 열린마음을 가지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말도안된다고 볼수있죠..
집안과 그리고 사회에서 비롯된 이러한 억압떄문에 억눌려있던 성의식이, 성인이 되면서 비로소 간섭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그걸 표출할 공간으로 모텔을 삼는거죠. 모텔이야말로 성적으로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포탈인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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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2012.01.13 23:36
실제의 문제는 남자는 혼전에 아무 여자나 관계해도 되나, 여자가 혼전에 관계 했다면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우리의 사회가 웃기는 거죠..
솔직히 모든이들의 마누라들이 혼전에 관계 한번 안한 사람 있을까요.
17살에 서로 눈맞아 계속 사귀고 나중에 결혼하는 케이스 아닌 담에야.
그러니 여자들은 과거를 숨길 수 밖에 없고 과거가 들통나면 남자들은 ......
울 남자들 속이 좁은게 아니라 사고 방식을 바꿀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나와 만나기 전에야 먼일이 있음 어떻습니까 ?
정조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물론 결혼 후에는 지켜야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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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Man 2012.01.14 15:03
불편한 진실..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변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자신부터 변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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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처럼 가식에 쩌는 민족도 없는 듯..........
앞으론 군자처럼 말하고
뒤론 개처럼 탐욕에 눈멀어서 이나라가 이 모양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