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 날입니다.
2011.05.19 01:12
지금으로부터 30 여년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일때입니다.
학교 수업중에 갑자기 교실 내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총상으로 위급...
당시에는 고교 야구가 인기절정인때라 야구 경기를 듣기 위하여 작은 트랜지스터 라듸오를 학교에까지
가지고 와서 수업 중에도 몰래 듣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속보에 선생님도 학생들도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박대통령 사망
소식이 뉴스에 흘러 나오고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광주의 금남로에는 전대와 조대 학생들의 촛불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난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몇번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를 목격하였습니다.
시위대를 이끄는 지도부의 통제 아래 4차선중 차선을 한개만 이용하여 차량 흐름도 크게 방해를 주지 않으며
질서있고 평화로운 시위였으며 손에 들린 촛불은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시민들의 호응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약간의 교통장애에 따른 불만섞인 소리들이.....
제 기억에는 2~3주 촛불시위가 계속 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만....
80년 5월로 접어들며 시위대의 세력이 커지자 교내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공수부대원들이 평화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을 곤봉으로 가격하여 트럭에 싫고 끌고 갔다..
공수부대원들의 눈빛이 약을 먹은 것처럼 이상해져서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젊은이들을 닥치는대로 구타하고
심지어는 임산부의 배를 발로 걷어 찼다는등... 목격담을 담은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위기의식을 느낀 학교장은 휴교령을 선포하며 교장선생님.담임선생님들이 교문에 나와서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씩
악수를 청하며 너무 위험하니 시내에 나가지 말고 몸조심 할것을 신신당부하며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시골(완도)에서 광주로 올라와 이모 집에서 하숙을 하던 나는 바깥 소식이 자뭇 궁금하고 호기심이 동하여
아침을 먹고 시내에 나가볼 요량으로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서다 이모님께 들켜 운동화를 압수 당하였다.
나갈 기회를 엿보던 나는 점심을 먹고 쓰레바를 끌고서 대문 밖을 서성거리다 외출에서 돌아온 이모부와 마주쳤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이모부께 답답하여 바람좀 쐬러 나간다고 둘러대니 이모부왈 밖은 너무 어수선하고
무서우니 시내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다. 이모집인 동명동 부근에서 도청까지는 걸어서 약 15분거리였다.
시내로 향하던중 조대 정문 앞에서는 전경이 아닌 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시위대 간의 난타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군인쪽에서는 최루탄을 쏘아대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보도블럭의 벽돌을 깨어서 군인들 쪽으로 던졌다.
이미 시위대에는 학생들만이 아닌 다수의 시민들이 합세하고 있었으며 합세한 시민들이 수군거리는 말들은
군인들이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을 무차별 구타 한다는 이야기와 잔인하기 까지 해서 임산부마져
구타했다는 (들리는 말로는 구타로 뱃속 아이가 나왔다는..아직도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은듯..) 소문에
나도 모르게 내 손안에는 어느덧 큼지막한 보도블럭을 깨뜨린 짱돌 한개가 힘있게 들려 있었다.
젊은이들에 대한 무차별 구타와 임산부 폭행은 머지않아 사실로 밝혀졌다.
손에 들린 짱돌을 있는 힘껐 지금 여기 시위대중 그 누구의 형이나 동생일지도 모를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던졌다.
그 다음날에는 아침을 먹자마자 쓰레바를 끌고 도청 분수대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연일 시위대의 리더들의 연설이 있었고 많은 시민들의 동참이 있었다. 날이 갈수록 시위대의 수는
늘어났고 군인들은 도청 앞에서 배수진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 도청을 빼앗기 위한 시위대의 몇번인가의 진격이
있었고 늘어난 시위대의 위세에 위협을 느낀 군인쪽에서의 하늘을 향한 공포탄이 쏘아졌다.
그러나 이미 잔인한 군인들의 구타를 목도한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힘있게 밀어 부쳤다.
갑작스레 총 쏘는 소리가 들리고 바로 내 옆의 사람이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마침내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여기저기서 동참한 시민들이 총탄에 힘없이 나가 떨어지고 도망치는 시위대는 아수라장이
되엇다. 구경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있어서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뒤로 도망치면서 연속해서 자전거에
걸려 넘어지고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은 빠르게 뛰지못해 큰 사람들 사이에서 걸려 넘어지고 미쳐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 사람을 밟고 도망치고....
나 또한 겁에 질려 사력을 다해 동명동 쪽을 향해 뛰었다. 뛰면서 얼핏 뒤돌아 보니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을 그
와중에서 끌고 나오는 용감한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도망쳐 뛰면서 비겁한 나의 모습이 죽도록 미워졌다.
손에 쓰레빠를 들고서 금남로 쪽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시위대는 군인들의 총탄 발사로 격앙되기 시작했고 불도져 차량을 이용해 도청을 막고 있는 군인을 밀어 버리자고
누군가 제안했고 사상자가 발생할수 있어 안된다고 하는 소리가 있고... 잠시후 어디선가 불도져 차량이 도청을 향해
진격을 시작햇다. 도청 앞에 바리케이트를 친 군인들과 수십미터 앞까지 불도져는 진격햇고 총성이 울리고...
잠시후 불도져에서 겁이 났던지 운전자가 황급히 뛰어 내리고 방향을 잃은 불도져는 도로 옆의 건물을 들이 박고
넘어졌다. 시위대중 누군가가 군인들이 총을 쏘니 우리도 무장을 해야 한다며 가까운 파출소와 경찰서를 습격하자고
햇다. 또한 누군가는 화순에 가면 광산에서 쓰는 다이너마이트를 구할수가 있다고 했다.
말이 나오자 모든 것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광주 시민이었으며 불순하다 여겨질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간인가 시간이 흐르고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누군가가 장갑차를 몰고 왔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전남대생 한 사람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도청을 향해 다시 진격을 시도했다.
애국가와 오월의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시민들도 그의 용감한 행동에 용기를 내어 건물 뒤쪽에 몸을 숨기고 목청이 터져라
따라 부르며 숨죽이며 장갑차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장갑차가 군인들 바리케이트 수십미터 앞까지 전진했을때
갑자기 수십발의 총성이 울리며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장갑차 위에 올라섰던 대학생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며
후진으로 급하게 빠져 나오고 장갑차를 향한 총성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 대학생이 쓰러진 그 순간 내 뺨에는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흘러 내렸다.
그리고 아아!! 나도 쏘고 싶다. 내게 총이 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체할수 없는 감정을 가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뒤이어 경찰서와파출서. 예비군 무기고 등에서 총을 탈취한 시민군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5.18 당시를 온 몸으로 부대꼈고 그 한 가운데에서 복면을 쓰고 차량에 타고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올려준 주먹밥을 먹으며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살육하며 도청으로 재진격 하기 하루 전까지 제 두 눈으로
모든 것을 목격했는데 북한의 세력과 연계 지으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
제가 보았던 그 날의 진실을 말하고자 올려 봅니다.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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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Hot 2011.05.19 01:23 -
유체이탈 2011.05.19 01:32 살아 계시니 다행입니다
국민들이 시위한다고 총을 쏘는 건 독재자임을 스스로 인증하는거죠
내란죄로 대통령 예우 자격이 없어졌는데도 아직도 경호비용으로
수십억씩 국민들 혈세로 써야하는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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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jmyh 2011.05.19 05:11 사실 살아 있다는게 부끄러운거죠.
지식인들은 거의가 다 살아 남았죠.
어떤시대. 어떤 종류의 민중항쟁에서도 항상 마지막으로 희생 되는건 민초들이죠...
많이 배운 지식인이나 운동을 이끈 지도자는 늘상 거의가 살아남죠.
그날 공수부대가 도청으로 재진격할 때에도 기회주의적 지도부와 학생등 지식인은 빠져 나가고...
마지막 도청 사수 결사대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5.18 그 이후 희생자 몫의 그 아픔을 마치 자기들이 모든것을 다 바쳤던 것처럼 행세하며
그 아픔의 몫을 자신 앞으로 가져 가는 자들은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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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jmyh 2011.05.19 01:32 저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큰 잘못을 했다고 봅니다.
5.18 희생자의 대표도 아니었으면서 모든 것들을 돈 몇 푼 쥐어주고 정치적으로 타협해 버렸으니까요.
전두환과 그의 무리들과의 정치적인 타협은 광주를 욕보이는 행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참 존경했던 지도자 였는데... 내게 있어 한 사람의 가치 없는 정치인으로 타락해 버린...
대통령도 출마하지 않았으면 존경할만한 큰 어른으로 우리 역사에 남았을 터인데.....
그러니 북한의 소행이었니,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니... 이런 말들이 나오죠.
그 때에는 고등학생이라 몽둥이를 들었지만..
지금도 그 날의 그 모습이 떠오르면 제 목숨을 걸고서 이제는 몽둥이가 아니라 총을 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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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 2011.05.19 01:40 전적으로 동의하는부분 입니다.
그역시 피해자 라는것은 인정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가장큰 피해자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종교관에 입각한 사면 까지는 어찌어찌 이해 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권...이라니요 내란수괴를 전임대통령의 권한을 준다는것은 "미친짓" 이라고 생각 합니다.
스스로 무슨 신이라도 되는듯한 뻘짓거리 했다고 생각 합니다.
죽은사람들과 수십년 간첩의 누명을 쓰고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
그럼에도 숨겨야했던 사람들...통탄하지 않았을까 짐작도 안됩니다
단지 짐작 뿐임에도 억울해서...민초는 그저 살아남았음을 다행이라 해야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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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향기 2011.05.19 01:40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 때문에 많은 희생이 생겼다면서 절대 잊지 않겠다고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518 챙깁겁니다. 그리고 항상 시위가 열리면 문제는 유언비어가 돌죠 결국 그것 때문에 사고가 터집니다. 과거나 현재나 늘 같죠 일부 사람들은 항상 문제를 크게 만들죠 광주도 결국 일이 너무 커져 버렸죠 시위할때 보면 일부 주동자들이 항상 문제입니다. 순수한 촛불 시위도 일부는 변질 시켜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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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2011.05.19 02:12
광주의 일이 커진건 그것때문이 아니라 문어대가리의 '필요'에 의해서 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당시 광주에서만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알고 있는 '서울의 봄'이 그것이지요. 당시 전국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광주가 희생양이 된겁니다. 이유는 단순하죠.
빨갱이 드립치면 무조건 들고 일어나는 이땅의 일부들... 문제는 인구수의 차이...
누구의 문제때문이 아닙니다. 전두환 그 개xx의 필요에 의해서 비공식 2000여명의 민중이 군화발에 쓰려져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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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향기 2011.05.19 02:22 원래 민주화 시위는 경기도,경상도 등 다른 지역이 제일 먼저 일어났고 오래전 부터 그들은 늘 민주화 시위했죠
박정희 사망후 뒤늦게 광주 학생들도 들고 일어났는데 결국 유언비어도 상당했던건 사실이죠 원래 시위 하면 유언비어 퍼뜨려서 시위대를 흥분 시키는건 전략을 요즘도 쓰고 있죠 광주가 다른 곳보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였던것도 사실이죠 특히 김대중 때문에 더 그랬죠
김대중 전대통령 인터뷰 보니까 그래서 광주 사람들에게 미안해 하던데 뭐 어쨌든
결국 덕 본 사람들은 알고 보면.......전두환,김대중 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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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세상 2011.05.19 02:47
뭐 그렇게 알고 계시다면 더이상 말씀은 드리지 않겠지만 대학시절 관련 다큐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당시 현장에 계셨던 분들 30여분을 인터뷰했지만 유언비어라... 글쎄요...
광주가 다른 곳보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는것도 뭐 제가 인터뷰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마도 눈엣가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었겠죠. 근데 김대중대통령이 광주덕을 봤다는건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의견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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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2011.05.19 01:41 중요한건 아니고, 본문의뜻을 흐릴까 염려스럽지만,
박정희대통령 사망ㅡ 1979년
5.18민주화운동ㅡ1980년 -
kbjmyh 2011.05.19 01:52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 당하고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과정에서 김대중과 김영삼 제거하려는 움직임들
이러한 움직임들이 광주에서는 이미 간파되어 알고 있었고...
이러한 움직임들 때문에 대학생들의 평화 촛불 시위가 장기간 이어졌고....
군부에서 김대중 내란죄 씌우고 공수부대 투입해 광주시민 자극시켜
폭동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는 것이 시간적으로 쭉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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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땡7 2011.05.19 02:20 79년 10월에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엿죠..이땐 김대중은 사면복권도 않되어잇고 가택연금상태 엿습니다..이땐 정승화가 대빵였습니다 이상황을 12월 12일 밤에 전두환 일당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무력화 시키고 사실상 실권을 장악합니다
전두환이 합수부장으로 사건만 밝히고 자신은 군인으로 계속 있겠다고 햇지만 외신들은 사실상 그가 실권을 장악 대통령이 될것이라고 보도햇죠 이런 외신보도를 국내 언론은 재갈이 물려져 잇어서 아는사람만 알고 잇는상태였죠 해는 바뀌고 80년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청와대로 들어갑니다 80년 봄 학생과 야당 재야단체에선 정치일정을 밝히라고 요구하죠 이때만 하더라도 서울이나 지방 데모같은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지나도 정치일정을 전혀 밝히지 않는 신군부를 의심하기시작 마침내 서울에서 대규모 데모가 발생합니다 신군부는 이것을 기회로 마각을 노골적으로 들어내죠 국회를 해산하고 여 야 정치인 (공화당 신민당..공화당은 박정희당) 인 중에서 이름있는 중견이상 의 정치인들을 모조리 정치규제법으로 묶고 정치활동을 못하게 만듬니다 김영삼 김종필 김상현 등등 (너무많아서..김대중은 가택연금상태지속) 을 부정축재로 몰고 김대중은 북한+ 시위에 연루시켜 구속시켜버림니다..이때부터 광주에서 본격적으로 시위가 발생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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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jmyh 2011.05.19 02:59 시차에 따른 오해가 있을수 있겠다 싶어 수호천사님의 의견을 반영해 본문을
한 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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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드참치 2011.05.19 01:44
그러고보니 오늘이 그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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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 2011.05.19 02:08 저와 비슷한 연배시네요
당시 조대 미대다니던 지인 어렵사리 도망쳐나와서 들려주던 얘기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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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게루저 2011.05.19 02:27 대학생 시위대라는 호칭을 갑자기 불순분자폭도로 바꿔 보도하던 라디오 뉴스... 기억이 나네요.
휴학하고 다음학기 수업료 마련하러 광주에 갔던 공부밖에 모르던 형님이 알고보니 무시무시한 폭도였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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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28호 2011.05.19 02:34 대학생이신 분은 도서관에서 열람해 보세요.
오래전에 동아일보에서 5.18 민주항쟁시 기자들과 외신기자들이 찍은 사진집이 있을 겁니다.
이 사진집명은 잘 모르겠지만, 열람하시면 있을 겁니다.
저도 오래전에 대학 도서관에 자료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정말... 지금 대학생들은 아마 그때를 잘 모르시겠죠...
잊으면 안되는 우리 역사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국민을 이렇게 할 수 있는지... 그런, 인간은 저렇게 눈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고...
한 인간은 비실비실해서 오늘내일하고 있고 한 인간은 너무 건강하게 살아있고.
스티븐 호킹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사후세계와 천국은 없다고...
어떻게 해야 이런 인간의 죄값을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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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향기 2011.05.19 02:50 사람은 다 똑같죠 정치인 똑같을 뿐입니다. 그러니 전두환이 큰 소리 치면서 사는 겁니다. 전두환을 치는건 결국 자신을 치는것과 같아요 고 이주일 선생이 정치판 떠난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잖아요.... 정치는 코미디다 라고 말씀하셨죠 서로 싸우고 죽일듯 하지만 뒤에서는 함께 술 마시고 어울리고.....결국 다 똑같다는 거죠 역사를 봐도 조정대신들 늘 똑같았죠 지들끼리 두 파로 나눠셔 싸우면서 결국 지들 이익을 가장 먼저 챙겼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한나라당 민주당 결국 똑같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죠 한쪽이 피를 보면 다음에 또 다른 한쪽이 피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럼 지들끼리 정권 바뀔때마다 죽어나가겠죠 그러니 자신들끼리 나름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싸우는 거죠
희생은 그 사람들 따르는 사람들이 다 어차피 희생 하잖아요
노통이 막상 대통령 되어 버리 다르더라고 했죠........ 정치인이 되는 순간 사람은 달라지고 대통령이 또 되면 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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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2011.05.19 03:09 역사에대한 댓가라고하면 그분들께 너무 죄송한 표현이지만 저런일이 일어나고도 아직도 염원한 민주주의.
빨갱이 폭도 국가내란을 일으키려는 민중들을 왜 북한이 진압하려했을까요?
제발 어느정도의 상식은 통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
늠름하게 2011.05.19 03:11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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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 2011.05.19 11:25 저는 사실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아주 잘 알지는 못합니다. 저 스스로가 재일동포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잘못된 지도자가 어떻게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의 기록을 통해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무엇보다 '객관적'인 기록이 필요합니다. 일본 또한 야스구니신사에 안치되어 있는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몇몇 이들은, 제 정체성을 걸고서 분명히 말하지만, 결코 신민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자들이 아닙니다.
5월 18일에 대해 물론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피를 흘린 비극적인 날이었다는 것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 땅에서 비극을 겪지 못한 외부인의 시각에서 볼 때에, 아직 그 당사자가 아무런 죄값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의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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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게루저 2011.05.19 13:33 국민들 보는 앞에서만 피 터지게 싸우다 금새 서로를 어루만지며 "우리가 남이가?"
차라리 임꺽정, 홍길동을 기다리는게 빠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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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jmyh 2011.05.19 18:44 우리의 역사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일제치하가 끝나고 나서도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단죄하지 못했고.....
5.18 이후에도 희생자쪽 정치인에게 국민들이 힘을 모아 권력을 이양해 줬음에도
취임초기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가해자쪽과 정치적 타협을 해버리고
세치 혀만 놀려대는 논쟁거리로만 만들고...
역시나 제대로된 단죄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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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i가 좋아 2011.05.19 13:54
저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92학번이구요.
고등학교 때 국사선생님이 하시던 얘기를 너무 막연하게만 느꼈었는데, 대학을 가서 보니 그게 현실이더군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적어도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도덕을 얘기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론 시위도 정말 많이 했지요. 승희꽃,,코스모스,,
왜 학생들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가야 했는지,,,
지금 저는 고향인 여수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공부시키는 일을 합니다. 학원선생이죠.
애들에게 역사에 대해 가끔씩 얘기할 때면 정말 부끄러워집니다.
왜 이 아이들도 모순된 세상을 느끼게 해야 하는지,,
많이 부끄럽습니다.
선배들이 했던 말들을 똑같이 학생들에게 해야 하고,
좀 더 나은 세상, 정당한 것을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는 세상을 아직 못 이끌었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적어도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있었던 그 비겁한 일을 학생들이 정확하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시간에도 그 당시의 일을 왜곡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너무 부끄럽기만 합니다.
술 한잔 했더니 알딸딸합니다.
전남대학교 92학번의 넋두리입니다...
부끄럽습니다. ㅠㅠ
-
kbjmyh 2011.05.19 18:36 좋은 선생님이시네요...
비무장한 시민을 무장한 군인 그것도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원들이
자국민을 학살한 행위는 두고두고 역사에 부끄러운 일로 남을겁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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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약입니다.. 정부 강압에 위해 어쩔수 없는 상황 지금도 그런듯 합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처벌 하자..선듯 나서는 사람도 없읍니다.. 공소 시효가 지나서 일까요..
아직도 암혹의 시대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