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이번 주 토요일에 워터 페스티벌 바베큐 파티가 열리는 날로 지정 됐었습니다. 조그마한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여기저기 광고도 하고 선착순 100명 모집한다고 하길래 1달 전에 미리 접수를 했었죠. 1인당 10만원이 넘는 금액이였지만 나이 들어서 젊은 이들에게 기죽기 싫어서 운동도 열심히 했어요. 뱃살 빼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수영복 차림에 페스티벌 즐기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운동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주최측에서 연락와서는 구체적인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고 진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환불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마음이 참 씁쓸 했습니다. 태어나서 클럽 말고는 이런 류의 축제는 처음 가본다고 기대를 많이했는데 목적이 사라져 버렸네요.
카카오 주가가 15만원이 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던 최고경영자(CEO)는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6개월 만에 그만뒀고 스톡옵션 행사로 94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주주들은 경영진이 배신했어요고 생각한다. 카카오는 혁신 대신 외부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대한민국 팔레스타인 예매 하는 것도 같았다. 에스엠을 무리하게 인수했던 이유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거액의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도 증시 상장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사실상 15년 만에 24조원대의 원전 수출이라는 대박 드라마를 탄생시켰다는 뉴스는 가뭄에 단비였다.
2024년 09월 10일 오만 대한민국은 어땠을까? 무엇보다 체코 원전은 20년 체코 대통령이 부재 중일 때 체코 순방에 나서 프라하성(城)과 비투스성당 등 체코 문화유산 관람에 나선 문재인·김정숙 부부의 공이 크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들의 '버킷리스트' 외유를 용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체코가 신규 원전사업을 추진할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문 전 대통령은 마치 체코의 원전사업의 미래를 예견한 듯 원전세일즈활동을 벌였다.
2024년 10월 10일 요르단 대한민국 일정도 함께 했다. 국가지도자로서 남다른 예지력을 갖고 체코를 방문한 것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죠. 그러니 이제 '김정숙 버킷리스트'라며 체코 순방을 비난하는 일은 그만하자. 지금의 체코 원전 수주에는 프라하성과 비투스 성당 등을 관람하면서 "우리 남편 어디 있나요?"를 외치며 '프라하의 연인'의 한 장면을 연출한 김정숙 여사도 일조하지 않았을까 여기면서 말이다. 중간 급유를 위해 들른 체코에서 원전 세일즈활동도 했으니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라하성 등을 둘러본 것 정도는 애교로 봐주는 것이 좋겠다.
2024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이라크도 마찬가지 였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국익(?)을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면서 동분서주하다가 프라하성과 바투스 성당, 타지마할, 후마윤 묘지, 루브르 박물관과 성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베르겐, 뭉크미술관, 소냐 왕비의 미술마구간, 피요르, 그리그의 집, 벨기에 왕립미술관 등 평소 찍어둔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려는 의지에 대해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망정 비난만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무직자 소액대출 하는 정도로 말이다. 아직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해 문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들의 공(功)이 크다고 공치사를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최소한의 염치는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 여사의 타지마할 단독 방문을 뒤늦게 '영부인의 첫 단독외교'라고 우기던 문 전 대통령이 조만간 "원전 수주는 내가 따낸 것"이라고 공치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죠. 지난 번 내놓은 외교안보 분야에 이은 두 번째 자화자찬 회고록을 내놓을 것 같다. 대주주의 자녀들이 세운 개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 회사를 키운 뒤 매각하는 ‘터널링’은 이제 중소·중견기업에서 더 성행한다.
현역가왕2 투표하기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매기다 보니 경영권 승계를 앞둔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 탓에 주가를 인위적으로 누른다는 비판 여론도 거세다. 상속세제 정상화가 특히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국경을 넘나드는 부의 이동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에 의해 전격 발탁돼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것도 그렇고, 대통령이 밀어줘 당 대표직(이회창은 총재, 한동훈은 비상대책위원장)을 거머쥔 것까지도 스토리가 비슷하다. 이후
현역가왕2 문자투표 하면서 대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기 정치'를 위해 현직 대통령에 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그렇다.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도 정치에선 하나의 재미다. 한동훈의 미래는 1997년의 이회창이 될까? 아니면 이회창을 넘어서는 스토리를 써 나갈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관계를 떠올리며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면 흥미가 생길 거에요. YS 정권의 몰락이 가시화된 건 19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사태였다. 기세를 올리던 이회창 총재는 국회 대표 연설을 통해 김영삼 정부의 경제 정책을 포함해 '3김 정치'를 비판했어요.
대한민국 이라크 예매 한다고 말이죠. 그 시간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비자금 의혹 수사 전격 중단을 지시했어요. 이회창의 국회 연설이 생중계되고 있던 TV 화면에 "비자금 수사 중단"이라는 속보 자막이 지나갔다. 이 장면이 2017년 대선을 가르는 결정적 장면이었을 거에요. 이회창은 격노했어요. "나는 마치 대중 앞에서 뺨을 맞은 것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 이회창이 회고록에 쓴 문장이다. 김영삼은 왜 그랬을까? 이회창은 김대중 비자금 파문의 불똥이 1992년 김영삼 대선 자금 의혹으로 튈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봤다. 결국 그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서울달 예약 하러 가야 했거든요. '3김 청산'의 대의 명분을 제기하는 틈새로 야당의 '자녀 병역 비리' 의혹이 파고 들었다. 노골적인 '이인제 지원설'이 튀어 나왔어요. 이회창호(號)에서 '김영삼계' 의원들이 탈당해 이인제에게 모여들었다. 거기에 김영삼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을 지지할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이회창에 비토를 놓았다. 이회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순의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출범시켰다. 이회창과 김영삼 두 사람의 갈등은 보수 정당을 이인제 당과 이회창 당으로 쪼개 놓았다.
미스터트롯3 투표하기 하나만 바라본 일이였다. 이회창에 의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3김의 마지막 축' 김종필은 김대중과 연대해 '이회창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이 스토리에서 이회창 이름 자리에 한동훈이라는 이름을 넣고 김영삼 이름 자리에 윤석열의 이름을 넣어보자. 개혁신당과 조국혁신당, 각각 보수와 진보 뿌리를 두고 나뉘어져 있다고요. 아마 대선을 앞두면 새로운 이합집산의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거에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서 있는 자리는, 김영삼 정권 말기 권력 다툼의 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희한하게도 '정권 말기 현상'을 정권 중반기에 불러들인 유일무이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역풍을 발판 삼아 집권 중반에 '과반 확보' 여당을 만들어낸 바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중반에 '국정 역풍'으로 헌정사에 기록적인 108석 여당을 만들어 냈고 레임덕을 앞당기고 있는 중이다.
노력이 대단하시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이시네요..
그래도 금전적인 손실은 없으셨으니, 잊어 버리셔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