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어서 ....
2020.01.19 23:43
세월이 가면 / 박인희. 박인환
박인환 詩
이진섭 曲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1970년대 초반 가수 박인희가 불러 유명해진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다. 박인희의 청아한 목소리에 본원적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 그리고 아름다운 샹송풍 멜로디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세월이 가면'은 1956년 이른 봄, 해방 이후 전위적 모더니즘 시운동을 주도해온 박인환(1926~56)이 심장마비로 요절하기 1주일 전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시와 노래는 전후 폐허가 된 명동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다시 모이고 음악다방과 술집이 하나 둘 생기던 시절, 시인의 단골 선술집인 경상도집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일화가 전한다.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은성주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가난한 작가와 화가, 연극인들이 뒤섞여 술을 마시던 봄날 밤, 수려한 외모와 낭만적 시풍으로 ‘명동백작’ ‘댄디보이’로 불렸던 박인환이 흥에 취해 시를 써 내려갔고 극작가 이진섭이 단숨에 곡을 붙였으며 ‘백치 아다다’를 부른 가수 나애심이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송지영과 나애심이 떠난 뒤 테너 임만섭과 소설가 이봉구가 새로 합석, 임만섭이 이 악보를 보고 정식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점으로 모여들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명동의 샹송’ ‘명동 엘레지’로 불렸던 명곡은 그렇게 탄생했다. 2005년 EBS의 ‘명동백작’이라는 24부작 드라마에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극 중 나애심으로 분한 배우가 담백하게 부른 '세월이 가면'도 오래 여운을 남겼다.
술보다 독한 눈물 / 박인환 시
눈물처럼 뚝뚝
낙엽지는 밤이면
당신의 그림자를 밟고 넘어진
외로운 내 마음을 잡아 보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그렇게 이별을 견뎠습니다.
맺지 못할 이 이별 또한 운명이라며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 했지만
맨 정신으론 잊지 못해 술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버린 당신이 뭘 알아
밤마다 내가 마시는건 술이 아니라
술보다 더 독한 눈물이였다는 것과
결국 내가 취해 쓰러진건
죽음보다 더 깊은
그리움 이였다는 것을...,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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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2020.01.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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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Den 2020.01.20 11:57
자세한 해설이 있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박인환 시인은 6.25 동란시 종군기자로 참가해서 동족상잔의 살육의 현장에서
젊은이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끔찍한 부상을 당한걸 많이 보아서
그 누구보다 전쟁의 참상을 잘 알았을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인간에 대한 살육과 도륙으로 삶과 생존에 대한 회의감, 잿더미가 되어버린
건물의 잔해들 속에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을때 ..
박인환 시인처럼 마치 평온한 시대의 현재의 젊은이처럼 잊혀져 가는 사랑을
추억하고 아쉬워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시로 남길수 있는 순수한 심상을
잃지 않고 간직할수 있었음에 경탄하게 됩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남긴 폐허의 잔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비록 말라 붙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한알의 사랑의 씨앗으로 전후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속을 따뜻하게 적셔주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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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Den 2020.01.20 12:02
제 영상이 너무 퇴폐적으로 느끼게끔 제작되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지나간 사랑 이후의 추억과 애틋함을 영상에 담아보려 했는데
실력이 워낙 부족하여 제 마음을 잘 담아내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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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2020.01.20 13:30
사죄는 무슨 ...별 말씀을요.
박인환 시인이 그런 성정으로 한 삶을 살다 간 것이지 않은가 라고 제 개인적 의견을 말한 것 뿐입니다.
댓글에 좋은 글 곡 감상 잘 했노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박인환 시인에 함몰 되었었던 제 자신이 있었지요. 문득 정신 차리고 깨어나 보니... 그 님은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잿빛으로 스러져 갔던 지독한 감상주의자였고 퇴폐적이었다라는 것을 자조적으로 얘기했을 따름입니다.
그래도 시인은 시인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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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리 2020.01.20 09:06
박인희 이전에 나애심씨가 먼저 불렀었던 곡 입니다
저도 박인희 버전을 듣고 자란 세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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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Den 2020.01.20 12:00
대하리님 댓글 감사합니다.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게 박인희 버젼입니다. 박인희의 청아하고 깨끗한 목소리가
시의 순수성을 잘 살려주어 느낌있는 노래로 만들어 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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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s 2020.01.20 12:11
아~~~ 옛 여친 생각나네...
성악을 전공했었는데 가을 캠퍼스에서 나즈막히 불러 주었던 노래인데...
잘 있겠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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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Den 2020.01.20 12:23
아름답고 좋은 추억을 간직하셨네요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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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100 2020.01.21 22:28
세월이가면 생각나는게
세원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움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이 노래가 생각나는데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전 후의 황폐한 현실을 영혼에 담고 헤어나오지 못했던
천재시인의 극한적인 퇴폐적 상징의 삶과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많은 사람들이, 낭만주의적인 것도 아니고 이 시인의 지극히 '퇴폐적 감상주의' 영감에 사로잡혀
현실을 기피하는 관념들을 쓸어 안고 함께 휘청거렸습니다.
그래서 회생이라는 '희망'의 메시지 하나 남겨 놓지 못한 천재시인이라는 의미를
퇴폐주의적인 한의 절규를 넋두리로 풀어낸 것에 불과 할 뿐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이도 있습니다.
가끔 기억을 끄집어 낼 때 마다 가슴 아리게 하는 시인입니다.
좋은 글과 음악 잘 감상했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꾸벅 !!!!